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하며 교회에게 예배중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에 동참해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를 중단하지 않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 많은 분들이 마음 아파하고 심지어 분노 하기도 합니다. 종교탄압을 운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충분히고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해 주일 성수를 못했다는 죄책감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6.25전쟁 때도 예배는 중단된 적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린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배의 장소는 꼭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피난처와 가정 등 다양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예배의 장소는 특정한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웃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면 잠시 중단하는 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거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병이 들 수 있고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도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 때도 믿음으로 감염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담대히 돌아다닌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전염병의 슈퍼전파자 되어 공동체를 파괴하는 원흉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가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절 남겼던 이야기는 지금도 충분히 적용할만 합니다.

악한 자가 독과 치명적 병을 퍼뜨렸다.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하고 약을 조제하여 먹을 것이다.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음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전염병이 왔을 때 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전염병을 퍼뜨리는 행위는 마귀의 일이고 자신을 죽이는 자살행위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닙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기 때문도 아닙니다.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예배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과 함께 아파하며 절망 가운데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